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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밍밍트리오
작성일 2018-10-04 11:39
ㆍ조회: 824      
|Cover Story| 작곡가 장한솔 그리고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Cover Story

사랑으로 가르치는
오케스트라 페스탈로치

작곡가 장한솔
그리고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구름 위의 아이들’과 함께 울다

아이들과의 마지막 리허설이었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처럼.
그는 지난 2년 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악기를 들었던 아이들과 오늘 기약 없는 이별을 해야 한다. 어린 단원들은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이 시간을 끝으로 떠나야 한다.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둘 그리면서 작곡한 곡, 하늘 가까이 높은 지대에 위치한 평창에서 만난, 선물처럼 소중한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쓴 작품 ‘구름 위의 아이들’을 지휘하려고 막 손을 모둘 때 참고 참았던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도저히 지휘봉을 흔들 수 없어 그는 보면대에 머리를 박았다. 이별의 고통이 악보 위에 출렁였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으니까.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고, 합주 직전에야 귀띔을 받은 강사들이 아이들이 연주를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조용히 독려했다. 겨우 연주를 다 마친 후, 장한솔 음악감독은 정돈되지 않은 목소리로 나지막히 말했다. “감독님과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작곡가 장한솔

장한솔은 학창 시절, 국내 양대 콩쿠르로 꼽히는 동아, 중앙음악콩쿠르 작곡부문에 연거푸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신문 지면에 난 입상자 인터뷰를 읽으며 고교 때부터 꿈꿨던 무대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서울창작음악제, 대한민국실내악작곡제전 등 수많은 콩쿠르와 음악제에서 입상하며 커리어를 쌓아갔다. 쉼 없이 도전하며 결과를 만들어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냥 그 자체를 즐겼던 것 같아요. 물론 과정은 너무 힘겨웠죠. 콩쿠르에 낼 작품 하나 완성을 위해서 두 달 정도는 정말 아무도 안 만나고 그것만 했으니까. 그래도 미완의 작곡가로서 스스로를 증명하고 작품을 내보일 기회는 콩쿠르와 음악제가 최선이었기에, 고생스러워도 제 음악을 무대에 올릴 기회를 얻으니까 즐겁더라고요.”
현대음악작곡가로서 영향을 받은 작곡가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의외로 바흐와 말러, 브루크너가 나온다.
“저는 요즘말로 덕업이 일치된 경우라, 클래식 음악 듣는 걸 제일 좋아해요. 바로크부터 근대까지 흔히들 많이 아는 그 작곡가들이 제 양분이에요. 대학 때 집에서 학교까지 두 시간이 넘게 걸렸거든요. 오고 가는 동안 음악을 엄청나게 들었어요. 말러와 브루크너처럼 대편성에 길이도 긴 교향곡들을 듣기에 안성맞춤이죠. 학교 시청각실의 악보와 음반들을 매일같이 뒤져보는 애용자기도 했습니다. 집도 멀겠다 그냥 학교에서 먹고 자고 곡 쓰는 날들이 많아서 제가 자주 쓰던 305호 레슨실은 ‘장한솔 연구실’로 불리기도 했어요.”
장한솔은 방학 중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은사인 백승우 교수를 찾아가 쓴 곡을 내보이고 레슨을 받았다.
“방학이다 보니 선생님께서도 학교에만 계시는 게 아니어서 댁으로도 찾아가고 했죠. 많으면 일주일에 세 번도 뵈었던 거 같아요. 귀찮으실 법도 한데, 마치 즐거운 여가활동 하듯 제 성장을 독려해주셨어요. 레슨비요? 단 한번도. 조심스럽게 한 번 말씀드렸다가 엄청 혼났어요.”
이렇듯 장한솔은 자신이 음악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로 ‘좋은 스승을 만난 행운’을 꼽는다.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대학원은 컴퓨터음악전공을 택해서 갔는데, 감사하게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정말 좋은 선생님들께 배울 수 있었어요. 장재호선생님께는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예술에서의 기술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고, 최지연선생님께는 컴퓨터사운드와 어쿠스틱 악기의 섬세한 조합을 배우면서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황성호선생님은 작곡기법이나 예술적인 사고는 물론 심지어 언어에까지 예민한 분이셔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최선의 형태로 발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셨어요. 마치 준비된 것처럼 좋은 선생님들께 두루 배울 수 있었던 게 제게는 축복이죠.”
장한솔은 전자음악작품으로도 주요 음악제에서 입상하였으며 해외에서도 초청되어 작품이 연주되었다. 뿐만 아니라 합창음악에도 애정을 가져 수원시립합창단, 대전시립합창단 등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편곡자로서 서울시향과 유라시안필하모닉 등과도 작업해왔다. 클래식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해오던 그가 현재는 약 30여 편의 연극과 뮤지컬, 음악극 등을 작곡한 음악감독으로 변신해있다. 어떤 연유에서일까?

무대 위의 숨, 그리고 음악

“어느 날 대학원 은사이신 장재호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셔서는, 연출가 한 분이 음악감독을 찾고 있는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하시기에 별 고민도 없이 해보겠다고 했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그 작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연출가 김광보가 쟁쟁한 배우, 스텝들과 명동예술극장에서 올릴 ‘줄리어스 시저’였다. 자리마다 최고의 스텝들이 포진해있는데 무대 음악 경험이 일천한 장한솔이 합류한 것을 다들 놀라워했다.
“어떻게 이 작품을 맡게 되었냐고들 묻기에 그냥 전화가 왔다 하니까 다들 놀라워하더라고요. 연극은 처음이다 하니 더 놀라고요. 나중에 들으니 제작 측에서도 고민이 많았대요. 제가 이쪽으로는 경력이 없다 하니까. 친구를 잘 둔 덕에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편곡을 맡은 적이 있었고 무대음악 경험은 그거 하난데 마침 김광보 연출님이 그 작품 초연 연출이셨대요. 그것도 인연인지. 여튼 연출님이나 극장 쪽에서도 모험을 한 거죠.”
그 모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줄리어스 시저’는 그 해 동아연극상 작품상과 연출상, 시청각디자인상을 휩쓸었다.
“연출님이 요즘에도 작업 때마다 ‘시저’이야기를 하세요. 그 작품만큼 훌륭하게 다시 좀 해보라는. 개인적으로 다른 작품들에 쓰인 아끼는 음악들도 많지만 ‘시저’가 제일 좋았던 것 같긴 해요. 완성도 면에서도.”
이후로 장한솔은 김광보 연출가의 음악감독으로 작품을 도맡아 해오고 있으며, 작년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자인 전인철 등 젊은 연출가들과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무대음악을 꾸준히 작업하게끔 이끄는 매력은 무엇일까.
“사실 작곡가는 홀로 방에서 책상 앞에 앉아 그 고독의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그런데 무대음악 작업은 연습실에 가서 배우들과 함께 대본을 보며 리딩도 하고, 연습 장면도 보면서 같이 호흡하거든요. 그게 즐거워요. 물론 결국 음악을 만들 때만큼은 고요한 ‘작곡가의 방’으로 들어가야 하지만요. 그리고 무엇보다, 무대에서 연주자에 의해 연주되는 음악 못지않은 날 것의 매력이랄까요. 현장에서 연주자나 배우의 호흡소리를 느껴보신 분들은 그 매력을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평창, 그리고 ‘구름 위의 아이들’과의 만남

작곡가로서의 일정을 소화하기도 버거운 와중에 장한솔은 평창으로 움직여 그곳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당시 올림픽을 앞둔 지역인데다 강원도의 문화 예술에 대한 수요와 기대가 높아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은 평창 남부지역의 아이들이 모여 막 활동을 시작하였고, 북부에 위치한 ‘평창스노우오케스트라’는 약 2년 먼저 창단되었다. 장한솔은 2016년부터 음악감독으로서 이 두 개의 단체를 맡게 됐다. 장한솔의 책상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유리 밑에 깔아둔 첫 오케스트라 자리 배치도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모두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입니다. 한계도 있었지만 정말 즐겁게 이끌었습니다. 학부모님들과 강사들의 열정적인 관심과 지원도 큰 힘이 되었죠. 처음에는 갑자기 두 개 단체 100명 가까운 자식들이 한꺼번에 생기니까 이름 외우기가 너무 버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름 하나하나가 소중해지더라고요. 어느 누구 하나 잊을 수가 없죠.”
두 단체에 똑같은 사랑을 나눠주건만 아이들은 늘 묻는다. “감독님, 꿈오가 좋아요? 스노우가 좋아요?” 어쩌면 그렇게 아이들이 한결같이 예쁜지 모른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엔 ‘꿈오’를, 화요일과 목요일엔 ‘스노우’를 만나 매일같이 행복을 느꼈다.
장한솔은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평창의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를 한데 모아 조직된 ‘평창청소년연합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도 겸직했다. 평창군은 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세 개의 창작곡을 위촉하였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성호 교수와 재미작곡가 김택수 씨, 그리고 장한솔 음악감독이 각각 작곡을 맡았다.
이 창작곡들은 ‘평창 3부작’으로 부르는데 2017년 1월 알펜시아콘서트홀에서 초연하였고, 같은 해 2월 올림픽 개최 D-365 행사로 알펜시아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평창청소년연합오케스트라 페스티벌에서 다시 연주되었다. 총 12개 단체의 약 476명이 함께 한 무대였다.
“이 행사를 위해서 아이들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방학도 없이 각 학교 및 단체별로 연습하고, 수 백 명이 모여 세 번의 연합 리허설을 진행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해요. 각 학교의 오케스트라 담당 교사 분들도 많이 애써주셨죠.”
장한솔이 작곡한 곡의 제목 ‘구름 위의 아이들’은 무슨 의미일까. 그는 당시 일주일 중 절반씩을 평창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었다. 해발 700미터 고도 ‘평창’의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평창에 머무는 동안 매일같이 오대천 곁길을 걸으면서 아이들을 떠올렸다.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모처럼 이른 산책을 하러 나갔습니다. 살짝 비가 내리고, 구름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고... 무릉도원 같은 그 풍경과 평창 아이들과의 소중한 만남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구상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음표 하나하나가 평창의 아이들에 대한 제 진솔한 감정이이에요.”
평창 3부작의 초연과 연합오케스트라의 활동은 성공적이었고, 장 감독이 맡은 두 개 오케스트라의 아이들도 알뜰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림픽을 목전에 두고 아이들과의 이별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음악감독직 재계약을 앞두고 이런 저런 잡음이 일면서 결론적으로 재계약이 불발되었다. 장한솔 음악감독이 계약조건으로 무리한 요구를 해 계약이 틀어졌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 감독이 제시한 조건들은 묵살되었고 재계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었어요. 아이들과 일을 맡은 사람들을 위해 상식적인 수준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요구했을 뿐입니다. 새로 비용이 드는 문제도 아니었고, 제 처우와 관련된 건 더더욱 아니고요. 타당한 이유와 배경이 있었는데 설명할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지금도 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는데 언젠가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급작스럽게 그만두게 되었지만 아이들에게는 함구했다. 마지막 수업 때는, 예년에도 그랬듯이 손 편지를 써서 유리병에 담아 아이들마다 하나씩 나눠주었다. 끝까지 의연하고자 했지만 마지막으로 ‘구름 위의 아이들’을 같이 연주하다가 장한솔은 결국 참지 못하고 눈물을 터트렸다. 보면대에 머리를 기대고 흐느끼는 동안 그 행복했던 시간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놀란 와중에 끝까지 연주를 마친 아이들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장 감독의 말에 하나 둘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로를 위로하며 한참을 부둥켜안고 울던 아이들을 뒤로 하고 그는 그렇게 애써 담담한 척 그 곳을 떠나왔다.

오케스트라 아이들의 학부모들 거리로 나서다

그렇게 조용히 끝날 일이 아니었는가보다. 어린 아이들을 대신해서 학부모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잘 꾸려온 장 감독이 왜 갑자기 그만둬야 하느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각각의 입장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일련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느낀 학부모들은 항의하거나 군청에 민원을 넣는 등 직접 행동에 나섰다. 급기야는 탄원서를 작성해 칼바람 부는 겨울날 장터에 나가 주민들의 서명을 받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돌이켜 다시 맡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거든요. 아이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런데 그 추운 겨울날 거리에까지 나선 학부모님들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독님 가지 마세요’라던 아이들의 절절한 말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요. 결국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만은 계속 맡기로 했습니다.”
장한솔은 그때 느꼈다. 평창에 머물면서 많은 걸 받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래도 조금은 남긴 것들이 있구나, 생각했다. 두 개의 오케스트라 중 한곳은 접었지만 지금도 매일 같이 연락을 주고받고 그리워해주는 아이들...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주는 아이들이 있어 고마울 뿐이다.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아이의 학부모님이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고맙다’는 편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내가 그 정도로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쳤나 싶었습니다. 선한 영향을 끼치려 매일 같이 노력했지만, 그 정도 말을 들을 정도인가 싶어 오히려 감사했죠.”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

비록 잠시 아픔을 겪었지만 아이들이 사랑하는 감독님을 지키게 된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한국형 엘 시스테마 사업이다.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의 근본 취지는 뛰어난 연주자들을 양성하려는 게 아니다. 음악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긍정적인 모습을 가꾸어 나가기를 원할 뿐이다.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에는 어려움이 많았죠. 그야말로 산과 들을 뛰어다니는 노루 같은 아이들도 있었고. 맨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녔으니까요. 또 여러 학교의 아이들이 모이다보니 산만하고 어수선했죠. 내가 전쟁터에 뛰어들었구나 싶더라고요. 한 번은 단체 활동을 하는데 한 아이가 너무 제멋대로여서, 저도 화가 나서 ‘그렇게 할 거면 집에 가’라고 했더니, ‘네’하고 정말 가방 메고 나가는 거예요.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결국 달래서 데려오긴 했는데. 그 뿐인가요. 다들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파트 연습 시간에 혼자 밖에 나가서 옆 운동장 트랙에서 산책을 하고 있고, 누구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받아먹겠다고 입 벌리고 뛰어다니고... 그런데 악기를 배우면서 서서히 변하더군요. 점점 차분해지고, 선생님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되고. 참 신기해요.”
필자는 언젠가 서울대 아비람 교수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스라엘에서 피아노를 구입하지 못해 종이악보를 그려놓고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동받은 바 있다. 장한솔 음악감독이 맡은 아이들 중에도 이처럼 어려운 아이들이 많았다. 어떤 친구는 간식으로 나온 햄버거를 입에 한 입 물고는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며 눈을 휘둥그레 했다. 어떤 아이는 집에 동생을 돌볼 사람이 없어 수업에 올 수가 없다고도 했다. 녹록치 않은 형편에 악기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아이들이지만 종이악기를 손수 만들어가면서, 실제 악기를 손에 쥐고 조금씩 배워가면서 한 땀 한 땀 음악의 털옷을 깁듯 이 어린이들은 점차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실제 악기를 접하기 전에 종이 악기를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서 포지션과 구조에 대해 설명해주었어요. 아직 음표조차 모르는 아이들도 많아서, 종이음표와 오선지를 크게 만들어 게임의 말처럼 그것들을 만지고 다루게 해줘요. 그리고 주사위를 던져 이긴 아이들이 음표를 채우는 방식으로 선율과 화음을 만들면 즉석에서 선생님들이 악기로 연주해 들려주는 방식으로 소리를 체험하게 했어요. 그 소리를 들으면서 행복하게 웃던 아이의 표정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뛰어난 영재들을 가르치던 장한솔에게 이런 교육은 뭔가 어울리지 않을 듯싶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은 대체할 수 없는 매력으로 행복과 기쁨을 전해준다’고 말한다.
‘꿈의 오케스트라’ 교육철학이 다채로운 음악교육을 통한 인성발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초기에는 매 수업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양한 교구들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당시 열정 넘치던 행정담당자들과 코디네이터 분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꿈의 오케스트라는 그래요. 감독과 강사, 행정파트에 이르기까지,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애정과 관심과 열정을 갖지 않으면 그 목적과 철학에 맞는 교육은 불가능해요. 그것들이 전제되어있지 않다면 그저 단순한 악기 레슨이 될 수밖에 없지요.”
장한솔 음악감독은 아이들과 아낌없이 스킨십을 한다. 그것만큼 관심과 애정을 잘 전달하는 방법도 없는 까닭이다. 물론 여학생들은 그럴 수 없지만 대신 그만큼 더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가능하면 모든 아이들의 이름을 매일 한번 씩은 불러주려고 애쓴다. 이따금씩 짧게라도 단둘이 앉아서 일상을 나눈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소, 닭, 고양이 등 동물 대가족의 이야기들이 참 정겹다. 딱딱한 도시 환경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정서 아닌가.
오랜 시간 동안 장한솔 음악감독을 비롯한 강사들과 아이들은 함께 변화해왔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쏟아주고 좋은 대화상대가 되어주는 한편 단원들의 실력 또한 키워가며 성장을 이끌어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점점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오케스트라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내가 크게 소리 내고 싶어도 작게 해야 할 때가 있고, 나보다 남을 돋보이게 해줘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침묵해야 한다. 아이들은 어느새 악기를 통해 ‘배려와 소통’을 배워나갔다.
“꿈의 오케스트라의 교육목적과 철학에 100% 확신을 갖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정말 예쁘게, 아름답게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 음악이라는 게, 오케스트라 교육이 이렇게 아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구나 했죠. 강사 분들과 종종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아이들 모습을 이야기하면서 울컥해요. 우리가 얼마나 값진 일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지. 저희가 애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 자체의 힘이 크죠.”

말러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는 초딩(?)들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의 아이들은 어떤 곡을 연습하고 있을까? 장한솔 음악감독은 되도록 다른 오케스트라에서 흔치 않은, ‘평창 꿈오’ 만의 고유한 레퍼토리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 예컨대 올해의 주요 레퍼토리는 ‘말러’와 ‘라흐마니노프’다. 물론 원곡 그대로는 어렵기 때문에 아이들 기량에 맞게 복잡한 패시지는 조금 단순하게 편곡하고 방대한 분량을 줄이기 위해 적절하게 발췌하는 등 꽤 복잡한 편곡과정을 거쳐서 아이들이 연주할 수 있도록 직접 악보를 만든다.
“초 중학생들의 실력은 한계가 있으니 어딜 가나 비슷한 곡들을 연주합니다. 저는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어릴 때부터 접하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초등학생이 언제 커서 말러를 연주해보겠어요. 설령 대학생이 되어 여전히 취미로 악기를 다루고 있어도 말러 작품을 연주할 기회는 흔치 않을 겁니다. 원곡을 조금 손보더라도 이런 작곡가의 이런 음악도 있단다 라며 다양한 음악세계를 알려주고 체험하게 해주고 싶은 거죠.”
장 감독은 ‘우리나라 초딩(?) 중 말러를 연주하는 아이들은 너희 뿐 일거야’ 라며 단원들에게 용기를 준다. 이미 말러는 상당한 연습을 해왔고, 하반기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발췌, 연습해서 12월 말 열릴 정기연주회에서 함께 선보일 계획이다.
“걱정이 앞서기는 하네요(웃음). 아주 멋진 피아니스트를 모셔 협연할 예정입니다.”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의 미래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은 지난 달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꿈의 오케스트라 합동공연’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작년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합동공연에, 올해 초에는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올림픽개최기념 합동공연에 일원으로 참여하여 큰 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실력을 뽐내왔다.
그런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이 내년 4년 차를 맞는다. 그 어느 때보다 내년이 중요하다. 예산 지원의 형태가 바뀌는 해이기 때문이다. 3년차까지는 국비가 넉넉히 지원되지만, 4년차부터는 책정된 지자체 예산에 상응하게 국비가 지원된다. 그마저도 국비는 전년도 대비 절반 이하의 상한선이 있어 자연히 예산규모는 초기 3년보다 줄어들게 되고 부족분은 자체적으로 조달해야 한다. 지자체에서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지 않으면 어려운 시기는 피할 수 없다. 다행히 새로 부임한 군수님께서 ‘꿈의 오케스트라’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예산 문제는 늘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변화를 통해 발산되는 에너지가 크고, 그 에너지가 마을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함께하는 아이들마다 각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50여 개의 서류상의 아이들이 아니라, 이름마다 이야기가 있고 음악이 있는 거죠. 우리가 부단히 애쓰지 않으면 이 아이들을 챙겨줄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깝기도 하고요. 기업체가 많은 큰 도시에서는 기업 후원이라도 기대할 수 있지만 평창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문화올림픽을 표방한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고 막 내린지 꼭 1년이 지나는 내년 초,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은 4년차로서 새로운 시작을 맞는 셈인데, 학부모들을 비롯하여 지역민들과 관계자들이 힘을 모아서 올림픽의 문화유산으로서, 또 평창의 미래 자양분이 될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위해서 이 교육 사업을 지속적으로 풍요롭게 일궈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곡가 장한솔의 길

장한솔은 생애 첫 작곡발표회를 앞두고 있다. 살펴보니 보통의 작곡발표회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다.
“오는 11월 17일에는 그간 제가 작업했던 연극 음악들을 모아 JCC아트센터에서 연주회를 엽니다. 제 첫 개인 작품발표회이기도 하고요.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사업 지원을 받아 열리는 공연인데, 감사한 일이죠. 음악이 쓰였던 공연들의 정서를 시각적인 도구들로 전달하고, 짧은 단막극도 시연하고, 독특한 형태가 될 텐데 조이 오브 스트링스의 멤버들과 부천시향, 양평필 단원 등 쟁쟁한 연주자 분들, 배우 분들과 함께 즐겁게 작업해보려고 해요.
전방위적 작곡가로서, 또 교육자로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 다른 열망이 있는지 물었다.
“돌이켜보면 이미 여러 장르에 걸쳐서 작업해왔어요. 현대음악, 연극, 뮤지컬, 음악극, 게임음악까지. 위촉받아 쓰고 있는 작품에 국악기가 편성되어 있어서 또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고, 내년에는 유럽 연주계획도 있고요.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음악도 시도해보고 싶네요. 장르라는 그릇은 개의치 않아요. 거기 담기는 제 아이덴티티가 중요한 거니까.”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장한솔 작곡가와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의 이야기

작곡가 장한솔은 개인 인터뷰 내내 본인보다 평창의 아이들을 이야기하는데 열중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장한솔은 평창에서 만난 이 아이들과 계속 소통하고 싶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을 마냥 지켜보고 싶다. 짧지 않은 기간 그만큼 정이 든 것이다. 그가 아이들을 사랑으로 가르치기에 아이들 역시 장성한 후에 장한솔을 사랑으로 기억하겠다.
작곡가 장한솔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기대하면서, 또한 그가 사랑하는 만큼이나 ‘꿈의 오케스트라, 평창’이 아이들에게 유익한 교육과 연주활동을 통해 언제까지나 행복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를 바란다.



김종섭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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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04
|Invitation of Choral| 윤학원 지휘자
Invitation of Choral 합창 인생 60주년을 맞는 마에스트로 윤학원 지휘자 서울 코러스센터 한국합창음악의 중흥을 위해 윤학원 교수가 현재 활동 중인 작곡가들과 함께 결성한 합창 전문 교육기관인 서울 코러스센터..
2018-10-04
|On Air| 제27회 성정 전국음악콩쿠르 대상 테너 손지훈
On Air 서서히 차츰차츰 음악과 세상으로 물들고픈 성악가 제27회 성정 전국음악콩쿠르 대상 테너 손지훈 지난 8월 28일, 국내에서 새로운 예술계 스타가 탄생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성정전국음악콩쿠르 파이널에서..
2018-10-04
|Hot Artist| 베이스 김신호 귀국 독창회
Hot Artist 스페인의 진한 향기에 열정을 담아 쏟아내다 베이스 김신호 귀국 독창회 환상적인 소리로 모든 캐릭터의 변화무쌍한 색깔을 완벽히 표현해내는 베이스 김신호가 오는 10월 21일(일) 오후 7시 30분 영산아..
2018-10-04
|Music People| 아시아고아트홀 Vn.성현경 Vc.성현정 Cl.성현주 자매들이 상주음악가
Music People 소리의 결까지 느끼는 음악공간 아시아고뮤직페스티벌의 중심 '아시아고아트홀' Vn.성현경 Vc.성현정 Cl.성현주 자매들이 상주음악가 이름이 특이했다. 아시아고라는 말은 이태리의 아시아고라는 지방을..
2018-10-04
|About University|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피아노페다고지학과 최양옥 교수
About University 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 피아노페다고지학과 배우고 싶은 욕구를 끌어올리는 티칭이 핵심 최양옥 교수에게 들어보는 학과의 장점 산학협력으로 취업과 실전 걱정 덜어 “요즘 대학원을 졸업한 학생들..
2018-10-04
|Point out from Outside| 수원시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최창석
Point out from Outside 지휘자 선정에 대한 관심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 수원시 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최창석 노조원들 지휘자의 중요성 깨달은 사건 ‘수원시향 지휘자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주제로 수원시향..
2018-10-04
|Preview| 김덕우 바이올린 리사이틀
Preview & Interview 김덕우 바이올린 리사이틀 아늑함과 친밀함의 사이, 무대의 고요한 침묵을 적시다 화려한 음색과 깊이 있는 해석으로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가 오는 10월 27일(토) 마리아칼라스홀..
2018-10-04
|Review|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Review 모차르트, 천재작곡가? 살리에리, 질투의 화신?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9월 13일(목) 오후 7시 30분 세종M씨어터 다른 자리에서 같은 꿈을 꾼 두 작곡가 오페라 ‘모차르트와 살리에..
2018-10-04
|Cover Story | 바리톤 박경준
내면을 울리는 진정한 오페라인 바리톤 박경준, 그를 만나다 발코레처럼 흔들림 없이 삶을 걷는 사나이 “미렐라 프레니의 ‘미미’는 말이죠. 그 사람이 아니면 지휘를 하기 싫어질 만큼 훌륭해요.” 오자와 세이지..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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