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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가 주목하는 클래식계 슈퍼스타 첼리스트 송영훈
ㆍ작성자: 얼음공주 ㆍ작성일: 2014-05-07 17:02 ㆍ조회: 1343
ㆍ추천: 0 송영훈.jpg (791KB) (Down:0)
 


자신만의 음악에 헌신할 줄 아는 연주자로서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중인 첼리스트 송영훈. 그가 영국 노던 왕립 음악원 시절 절친했던 친구들과 ‘4첼리스트 콘서트’ 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에는 송영훈을 비롯해 제11회 차이코프스키 국제경연대회 준우승과 2001년 뉴욕 나움버그 콩쿠르 1위 등 국제적 명성을 쌓은 중국의 대표적인 첼리스트 리 웨이 친 (Li Wei Qin), 로잔과 멘델스존 콩쿠르 등 여러 콩쿠르를 석권하며 바젤과 로잔느 체임버 오케스트라 첼로수석 등을 지낸 스위스의 요엘 마로시 (Joel Marosi), 스웨덴이 낳은 대표적 첼리스트로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한 클래스 군나르손(Claes Gunnarsson)이 함께한다. 어떤 수식어도 필요없는 한국 클래식계의 슈퍼스타 송영훈을 에듀클래식에서 만나보았다.

서울시향 협연으로 '음악 신동'으로 불려

비올리스트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많은 음악을 접했던 그는 5살 때 그보다 4살 많은 형이 바이올린(바이올리니스트 송정훈)을 배우고 있었고 평소 욕심 많았던 그는 경쟁 심리로 형보다 더 큰 악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첼로를 시작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부모님 따라 음악회를 많이 갔어요. 부모님은 제가 자연스럽게 음악을 좋아하고 또 하고 싶게끔 만드셨죠. 어린나이에 악기를 시작했지만 음악을 강요하고 연습을 시켰다면 저는 음악을 하지 않았을 거예요.”
첼로를 시작한 이후 한국일보 콩쿠르, 이화경향 콩쿠르 등 한국에서 치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1위를 석권하였고 열한 살 때 서울시향과 협연하며 ‘음악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는 예원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들어갔고,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며 첼리스트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좋은 스승, 잊지 못할 선생님 

그는 줄리어드 음대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부모님과도 같은 존재 채닝 로빈스(Robbins) 선생을 만난다.
“그분은 음악만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옷은 어떻게 입어라’,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이렇게 해라’부터 무대매너, 심지어 연주회 때 양말 색깔까지 신경 써서 꼼꼼히 가르쳐주셨어요. 선생님이 암 투병 중에도 자택에 링거를 꽂고 누워서도 연주를 들으며 정성스레 지도해 주셨으니 그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채닝 로빈스는 송영훈에게 선생님 5명을 직접 추천하고 제자의 이력서와 비디오 연주까지 일일이 챙겨주었고 그가 영국 노던 왕립음악원에 들어가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그는 두 번째 스승인 랄프 커슈바움(Kirshbaum)을 만나게 되었다.
“영국에 가서 우연한 기회에 맨체스터 첼로 페스티벌을 보게 되었어요. 故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등 당대의 최고의 첼리스트들이 무대에 섰죠. 그때 들은 음악은 제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훌륭한 첼리스트를 보면서 감동 받았어요. ‘저런 음악이 있구나, 저게 음악이구나, 나도 저렇게 해야지’ 하는 욕심이 생겼죠. 그때 스스로 생각하는 수준에 도달하면 평생 첼리스트로 살 것이고 아니면 포기하겠다는 강한 다짐을 하고 손가락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어요. 음악과 첼로가 얼마나 즐거운 건지 그때 깨달았지요.”
최선을 다했지만 좀처럼 실력은 향상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는 짐을 챙겨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년시절을 외국에서 생활하던 탓에 아버지와 함께 보낼 시간이 없었어요. 서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병석에 계신 아버지와 많은 대화를 하는 시간이 행복했어요. 아버지는 저에게 ‘세상에 가서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게 너의 사명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 아버지의 말씀을 머릿속에 새기고 정상급 젊은 연주자로 구성된 실내악단 세종솔로이스츠의 멤버가 돼 뉴욕으로 갔고 1년 6개월 후 핀란드 시벨리우스음악원에 들어갔다.
그의 마지막 스승은 핀란드 출신의 거장이신 노라스(Noras) 선생이었다. “연주하다 보니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죠. 그때 시벨리우스음악원의 첼로 거장 아르토 노라스 선생님이 ‘음악가는 편안한 삶을 살아선 안돼!! 나는 전 세계에서 다섯 명만 가르치는데, 나에게 지옥훈련을 받아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지옥훈련을 한 후 첼로를 계속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 내리겠다고 생각하고 선생님 제자로 들어갔어요. 그 당시 핀란드에서는 백야현상(밤에도 해가 지지 않고 대낮같이 밝은 현상)이 이어졌었는데 백야가 있는 시기에는 연습을 해도 해도 해가 지지 않아 정말 끝도 없이 연습만 했을 정도로 힘들고 성숙할 수 있는 시기를 보냈죠.”
선생님들 곁을 떠난 뒤에는 스스로 선생님이 되어 준비하고 연습하면서 그분들이 저에게 주셨던 많은 사랑과 가르침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음악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돌려줘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는데 이를 학생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클래식계의 원조 꽃미남, MIK 앙상블

MIK (Made In Korea의 약자) 앙상블은 매번 공연 때마다 아이돌 가수 못지않은 팬클럽을 몰고 다닌다. 그에게 MIK 앙상블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세한 내용은 에듀클래식 5월호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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